중국 시장을 옥토로 바꾼 글로벌 기업들, ③KFC

노일용 기자 | 기사입력 2014/03/18 [18:18]

중국 시장을 옥토로 바꾼 글로벌 기업들, ③KFC

노일용 | 입력 : 2014/03/18 [18:18]

[시사뉴스메이커 노일용 기자]LG경제연구원은 척박했던 중국 시장을 옥토로 바꾼 글로벌 기업들 조사·발표 했다.


3) K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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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랜드 전문회사인 밀워드 브라운(Millward Brown)사의 조사(’13. 7.)에 의하면 중국 소비자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계 브랜드는 KFC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은 KFC를 카이펑차이(Kai Feng Cai, 開封菜)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의 요리’라는 뜻이다. 그 정도로 중국 사람의 입맛에 딱 맞는 훌륭한 음식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지금은 이렇듯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KFC의 중국사업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1973년 KFC는 홍콩에 첫 매장을 열면서 중화권 진출의 첫 발을 내 디뎠다. 당시 기자 회견에서 KFC는 향후 홍콩에만 50~60개의 매장을 열 것이라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발표했다. TV/신문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홍보 활동을 통해 KFC는 짧은 시간 안에 홍콩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었고 매장은 곧 11개로 늘어났다.

KFC는 홍콩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74년에 7개의 매장이 문을 닫았다. 당시 KFC는 4개의 매장은 계속해서 운영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1975년에 철수했다. 원대한 포부와는 달리 2년이 채 되지 않아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런 참담한 실패의 근본 원인은 중화권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이미 많은 성공을 경험했던 KFC의 경영진은 기존의 방식이 홍콩에서도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홍콩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빨아 먹을 정도의 맛(Finger lickin’ good!)’이라는 광고 슬로건은 홍콩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중화권에서는 식사 중에 손가락을 빤다는 것은 더럽고 예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식습관 측면에서도 KFC는 현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중화권에 속하는 홍콩 사람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홍콩의 KFC 매장에는 앉을 공간이 없었다. 이는 자가용을 몰고와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서 먹는 것이 보편적인 미국식 사고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KFC 매장을 방문한 홍콩 소비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를 통해 KFC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이다. ‘KFC in China: Secret Recipe for Success’의 저자인 Liu Warren은 “홍콩에서의 실패는 KFC에게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KFC가 중화권 사업에 재도전 할 시점에는 아예 처음부터 접근 방법을 다르게 가져갔다. ‘양적인 성장에 앞서 중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고객가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KFC는 1989년 중국계 대만인인 Sam Su를 중국사업 책임자로 영입 하고. 중국사업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다. 70년 대 홍콩 사업에서 실패한 이유가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계 대만인인 Sam Su는 중화문화권에서 성장했지만, P&G에서 일하면서 서구 기업의 경영 방식도 익힌 사람이었다. Liu Warren은 “이 의사 결정이 KFC 중국사업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Sam Su를 중심에 두고 KFC의 중국사업 성공 신화가 시작되었다. Sam Su가 KFC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국을 아는 대만인, 미국/캐나다계 중국인을 주요 경영진으로 영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중국에서 패스트 푸드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중국 소비자와 시장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기존의 메뉴로는 경제 수준이 높고 서구 문화를 자주 접한 대도시에서는 그럭저럭 사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지방의 중소도시까지 침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중국사업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음식의 현지화

KFC는 현지화된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상하이에 ‘실험주방’이라는 명칭의 개발 부서를 설립했다.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 중인 실험주방에서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에 걸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그리고, 베이징, 상하이 등 6개 대도시에서 필드 테스트를 한다. 여기에서 통과가 된 이후에야 정식 메뉴로 등록이 가능하다. 매우 체계적인 신제품 개발 및 출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를 통해 90여 개의 현지화된 메뉴(2009년 기준)가 탄생했다. 제대로 식사를 하려면 쌀밥, 고기, 야채 등을 고루 먹어야 한다는 중국 식습관을 고려한 세트 메뉴, 아침에 즐겨 먹는 죽과 여우티아오(油條)가 같이 제공되는 세트 메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음식의 현지화’는 비단 미국식과 중국식의 차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 내에서도 ‘현지화’의 개념이 적용된다. KFC는 초기에는 중국 전역에 동일한 조리법에 의해 만들어진 표준화된 메뉴를 제공했다. 그런데, 똑같은 메뉴에 대해 상하이에서는 ‘음식이 너무 맵다’는 반응이 나온 반면, 사천성이나 호남성에서는 ‘음식이 너무 담백하고 싱거워서 맛이 없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에 주목한 KFC는 중국 내에서도 각 지역별로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끝 에 KFC의 현지화된 메뉴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KFC는 매장 구성에 있어서도 중국인의 식사 문화를 반영했다. KFC의 중국 매장은 서구 지역과는 달리 1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둘러 않아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을 갖추고 있다.

즉,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서 식사하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게 한 것이다. 70년대 홍콩 진출 시 매장에 앉을 공간 조차 없었던 모습과는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KFC는 중국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1997년부터는 자매회사인 피자헛, 타코벨 등과 공동으로 중국 물류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96년 당시 KFC의 중국 내 매장 수는 100개에 불과했지만, 향후 성장을 위해서는 광활한 중국 대륙 이곳 저곳에 퍼져 있게 될 수많은 매장에 좋은 원재료를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물류 체계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 KFC는 11개의 대형물류센터와 6개의 소규모 물류센터를 갖추고 있다. 또한, KFC는 원재료 공급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원재료를 구입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중국 공급업체들의 위생 관리 체계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KFC는 엄격한 품질 검사 기준을 세우고 철저하게 엄수했다.

중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현지화된 메뉴, 체계적인 인프라를 갖춘 이후에 KFC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하게 된다. 중국 진출 초기에는 성장이 우선 목표가 아니었다. 87년에 첫 번째 매장을 연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100번째 매장을 열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답답할 정도로 느린 성장 속도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KFC가 중국소비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필요한 고객가치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이를 창출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쌓아가던 기간이었다. 탄탄한 발판이 구축된 이후에 KFC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9년 만에 매장 수는 100개에서 1,000개로 10배 늘어났고, 다시 8년 만에 3,000개가 늘어나 2012년 말에는 4,000개를 돌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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